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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세르게이성 세르게이는 러시아의 어려운 시대에 살았으며(1314-1392) 몽고치하에서 조국과 민족을 해방시키고 러시아를 새로이 창건하는 일에 깊이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성 세르게이는 1314년 5월 3일, 로스토프에서 출생하였고 40일 째 되는 날, 바르폴로메오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성사 주례자 미카엘 신부는 부모에게 "기뻐하십시오, 이 아기는 성 삼위 하느님의 일꾼으로 선택받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본당 신부님의 예언은 적중되었습니다. 그 후 일곱 살이 되어서는 수도원에서 읽는 것과 쓰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자연의 아름다움과 고요함을 더 좋아하였습니다. 바르폴로메오는 글을 읽거나 쓰는 일에는 형제들이나 친구들에 비하여 공부 못하는 아이로 뒤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은 크게 걱정을 하며 공부하라고 자주 꾸중도 하였습니다. 선생님도 특별한 배려로 지도하였습니다. 그래도 바르폴로메오의 공부 성적은 낙제점이 었습니다.
하루는 바르폴로메오가 뛰어 놀다가 참나무 아래서 기도하는 나이 많은 수사님을 만났습니다. 수사님은 바르폴로메오에게 프로스포라(성찬예배 봉헌용 빵)조각을 주면서 "바르폴로메오야 이것을 받아먹으라. 이것을 먹으면 네가 공부를 잘 할 수 있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바르폴로메오는 축성된 빵(프로스포라)조각을 받아 먹고 나머지는 가방 속에 집어넣었습니다. 바르폴로메오는 그 수사님을 자기 집으로 이끌어 모셔갔습니다.

부모님은 수사님을 반갑게 잘 모셔들이고서는 바르폴로메오가 커서 무엇이 될까? 하며 크게 걱정하였습니다. 그런데 글을 잘 읽지 못하던 바르폴로메오는 즉시 글을 읽기 시작했고 한 시간 동안이나 소리내어 읽었습니다. 수사님은 "걱정하지 마시오. 이 어린이는 장차 하느님 앞에서 훌륭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성 삼위일체 하느님의 일꾼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나이 많은 수사님은 떠나가시고 다시는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 나이 많은 수사님은 천사였습니다.
그 후, 1480 년에 바르폴로메오의 부모님은, 나이 많은 수사로 나타났던 하느님의 천사의 발현장소 바로 그 곳, 자기네 집터에 바르닛싸 수도원을 세우고 수도원 현관에는 바르폴로메오가 천사를 만나 대화하는 장면을 그림으로 잘 그려 봉헌하였습니다.
바르폴로메오의 부모님은 로스토프에서 상류층이며 모스크바에 가서도 살 수 있었지만 하느님의 섭리로 라도네쮜의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골로 이사를 하여 동정 성모탄생 성당 가까이에 정착하였습니다. 라도네쮜는 로스토프에서 남쪽으로 160킬로 떨어졌고, 모스크바에서는 동북쪽으로 약 60킬로 거리에 위치합니다.
바르폴로메오의 형과 아우는 결혼하여 독립하였고 혼자서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중에 광야로 나아가 은수 생활을 하고싶다고 부모님에게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은 "우리들은 이제 늙었고 병들어 돌 봐줄 사람도 없다. 우리는 머지않아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떠날 것이다. 그 때까지 너는 너무 멀리 가지말고 우리 가까이서 지내자." 라고 말씀하시니 바르폴로메오는 부모님의 청에 기꺼이 동의하였고, 이어서 부모님(끼릴과 마리아)은 호츠코브 인근 수사원과 수녀원으로 각각 들어갔습니다. 라도네쮜로 이주해 온지 6년만에 부모님은 평화롭게 하느님의 품에 안겼습니다(1334년)

바르폴로메오는 20세의 나이에 하느님의 소명을 실천하기 위하여 형 스테파노와 함께 라도네쮜 숲 속으로 들어가서 은수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형 스테파노는 일찍 홀아비가 되었음) 광야의 숲 속에서 은수(隱修) 생활을 한다는 것은 정말 고통이었습니다. 늑대, 곰 등 야수의 위협과 추위 그리고 배고픔, 특히 겨울철에 식량구입문제는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형 스테파노는 도시근교 수도원으로 옮겼으나 바르폴로메오는 홀로 광야의 숲 속에서 은수 수행을 계속하면서 침묵과 기도 중에 수도자 서원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바르폴로메오는 23세 되던 해, 1337. 10. 7, 성 순교자 세르게이 축일에 세르게이라는 수도명을 받고 정식 허원 수사가 되었습니다.
세르게이의 은수처 라도네쮜의 스키트에 관한 소문은 사방에 퍼졌습니다. 다른 곳의 수도자들이 방문하고 먹을 음식도 날라 왔습니다. 그리고 세르게이와 함께 수도생활을 하겠다고, 나이 많은 바실리 수사가 맨 먼저 왔고 그 다음으로 부제 오네시모 , 사제 엘리사가 왔습니다. 그들은 손수 나무로 집을 지었습니다. 세르게이는 아직 젊었기에 남보다 두 배나 더 일을 해내었습니다. 이제 수도공동체 일원이 된 이들은 매일 성당에 모여 아침기도, 아침예배, 시간기도, 저녁예배, 그리고 종과기도를 바치고 주일과 축일에는 나이 많은 메트로판 신부님을 모셔다가 리뚜르기야(서찬예배)를 봉헌하고 성체 성혈을 영했습니다. 세르게이는 성직자가 된다든지 원장이 되리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그의 하루일과는 주로 장작을 폐거나 부엌으로 나르는 일이거나 부엌바닥을 쓰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밤에는 기도로 시간을 보내고 먹는 것이라고는 작은 빵 한 조각과 물뿐이었습니다.

하루는 수도자들이 세르게이를 스타렛쯔(장상 또는 수도원장)로 선출했습니다. 그러나 세르게이는 자기는 수행능력이 없다고 원장직 수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세르게이는 이 문제를 주교님과 상담하는 중에 주교님은 "형제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성 삼위일체 수도원의 책임자로 점지되었으니 매사를 순명으로 받아들이시오."라고 말하고는 세르게이를 이끌고 성당으로 가서 첫 날에는 차부제로, 이튿 날에는 부제로 마지막 날에는 리뚜르기야 중에 사제로 서품 하였습니다.(1343) 세르게이는 원장이 된 후 첫 설교로 마태오 복음 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시편 34:11, "젊은이들아, 와서 내 말을 들어라. 두려운 마음으로 야훼를 섬기는 길을 가르쳐 주마." 갈라디아서 5:22-23,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에 대하여 가르침을 하였습니다.

성 세르게이가 라도네쮜 광야의 숲 속에서 홀로 시작한 은수처는 스키트로 발전하였고 스키트는 수도원으로, 그 다음에는 전국에서 가장 큰 대수도원(라브라)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성 세르게이 생애의 외적인 패턴은 에집트의 성 안토니오의 생애를 연상하게 합니다. 성 세르게이는 농부생활을 하면서 가난한 이들이 입는 남루한 옷을 즐겨 입는 자기 겸허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세르게이는 모스크바의 대공과는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그는 모스크바 도시를 확장하도록 권했습니다. 그리고 디미트리 돈스코이 대공이 러시아군대의 최고 지도자로 쿨리코프 전쟁에 출전하기 전에 성 세르게이를 방문했다는 것은 깊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성 세르게이는 탐험가이며 개척자였습니다. 당시 고적한 생활을 찾던 사람들은 먼저 밀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새롭고 작은 기도 공동체는, 새 농지를 갖게되는 수도원 중심 새마을이 형성되었습니다. 라도네쮜 중심지로부터 개척 수도원 새마을은 북 러시아를 가로질러 백해와 북극권까지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습니다. 성 세르게이 생전에는 이러한 수도원 중심 새마을이 40여 개가 형성되었으며 그의 사후에는 그의 제자들에 의해 50여 개가 형성되었습니다. 성 세르게이와 그의 후예 수도자들은 탐험가이며 개척자였을 뿐 아니라 선교사였습니다. 그들이 만나는 원주민은 바로 선교의 대상이었습니다. 성 세르게이는 성 그레고리오 팔라마스와 동시대 사람으로서 헤시카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특별히 수도자들에게는 신앙적, 신비적 체험을 하게 하면서 원시림을 개척해 들어가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선교의 대상으로 만나도록 독려하였다. 그는 수도생활을 사회. 경제적인 면과 신앙. 신비적인 양면을 잘 조화시키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이러한 영향은 전 러시아 정교회 곧 전체 국민들에게 미쳤습니다. 그리고 그는 정치적으로 모스크바 중심 러시아를 타타르의 압제에 대항하여 해방을 쟁취하자고 독려하였습니다. 성 세르게이 시대에 이어 200년간(1350 -1550)은 러시아 정신문화 발전의 황금기라 합니다. 그래서 성 세르게이를 새 러시아의 창설자라 호칭합니다.

성 세르게이와 그 후계자들은 종교예술 분야, 특히 "이콘"분야에 눈부신 활동을 하였습니다. 라도네쮜의 성 삼위 이콘은 안드레이 류블레프가 그린 작품인데 성 세르게이를 기념하기 위한 것임에는 분명합니다.

성 세르게이가 안식에 든 후 61년째 되는 해에 비잔티움 제국은 터키 지배하에 들어갔습니다. 비잔티움은 한 때 스스로를 하느님 나라의 이콘으로 착각하기도 했었습니다.
성 세르게이의 많은 수고로 세워진 새 러시아는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이제 정교회 세계에서 비잔티움의 자리를 이어받았다고 여겼습니다. 새 러시아는 하느님 소명에 충실히 이행할 수 있는 준비되고 자격 갖춘 하느님의 일꾼으로 자처하였습니다. 새 러시아는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과 시행착오와 고난 속에서도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과 사상 그리고 그분에 대한 신앙을 전 국민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리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탄의 심한 장난은 마치 의인 욥을 고난과 죽음의 질곡으로 몰아넣었듯이, "하느님은 없다 !"라고 미친 듯이 소리지르며 날뛰던 무신론자들, "그리스도의 적들"이 하느님의 교회를 약탈 파괴하고 하느님의 백성을 이유 없이 구타 폭행하며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는 수 많은 백성들의 피를 흘리게 하고 죽였습니다. 새 순교자들과 목숨을 잃은 이들의 수는 수천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근 한 세기를 나라 땅 안에서 살인적 광기의 정치체제 하에서 목숨 걸고 지켜온 신앙과 교회 그리고 유리사산으로 내나라 땅을 떠나 이역, 나라밖으로 흩어져 고난의 눈물을 흘리면서 신앙을 지켜온 하느님의 백성과 교회는 이제 하나인 하느님의 교회로서 은혜의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21세기의 러시아정교회는 나라를 재건하고 항구적 세계평화 구현,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전 인류의 가슴에 충만하도록 크게 기여해야 하겠습니다. 바로 이 은혜의 시대에 라도네쮜의 성 세르게이의 신앙과 정신은 다시 이해되고 발전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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