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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발흥

알렉산더 네프스키공의 사후 여러 해 동안 전란이 일어나면서 거의 전 러시아가 이에 휘말려씅나 그 와중에도 알렉산더 네프스키공의 막내아들 다니엘이 지배하던 영지만은 평화를 유지하고 질서있는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즉 다니엘은 자신이 물려받은 모스크바를 27년간 통치하면서 민족부흥의 중심지로 바꾸어 놓았다. 그는 자기의 형제들과 친척들이 전력을 기울이며 몰두했던 분쟁에 참여하지 않은 채, 모스크바를 발전시키는 데에만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서로의 싸움으로 돈이 필요해진 다는 영주들로부터 영지들을 돈을 주고 사들였고, 그의 영지가 안전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러시아 곳곳에서 피난민들이 몰려들었다. 이로써 모스크바는 공후들의 분쟁과 타타르족의 침략으로 인해 산산조각이 나고만 러시아를 보호해줄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공후가 지배하는 도시가 되었다.
이러한 평화적 영토확장은 그의 둘째 아들 이반 1세에 의해 계승되었다. 그의 치하에서 모스크바는 全러시아의 수도가 되었으며, 따라서 러시아의 다른 모든 도시에 대한 정신적인 지배권도 확보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타타르족에게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과 협력하여 칸에게 조세를 징수할 수 있는 권리를 받아 행사하였고, 이 일을 매우 효율적으로 수행하여 타타르인들의 지속적인 신임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모스크바 공국은 국려과 규모의 면에서 급격한 발전을 이루었다.
이러한 이반의 업적은 그만의 현명함뿐만이 아니라 러시아 교회의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당시 러시아 교회의 지도자는 능력이 뛰어났고 또 신앙심이 독실했던 표트르 수좌 대주교였다. 그는 전임자였던 끼릴이나 막심과 마찬가지로 이곳 저곳을 여행하면서, 서로 분쟁하는 많은 공국들로 갈갈이 찢겨진 러시아에서 어떻게 해서든 민족통일의 정신을 유지시키려 하였다. 따라서 모스크바에 미카엘 대천사께 봉헌된 성당을 세운 이반공은 표트르 수좌 대주교의 그러한 열정에 감복하여 성모안식 대성당도 세웠다. 표트르는 자신이 죽으면 이 성모안식 대성당에 묻으라고 하였고 후일 그대로 이행되었다. 이로 인해 모스크바는 전 러시아에서 존경받던 인물이 묻힌 유명한 도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표트르의 후계자 테오그노스트가 다른 공후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모스크바를 자신의 항구적 거주지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이다(1328년).
그리하여 이반이 통치하던 시기에 모스크바의 정치적 종교적 우위성이 확립되어 모스크바 근교에 세워진 성 삼위일체 세르게이 대수도원은 광범위한 러시아 수도원 운동의 본산지가 되었으며, 이 수도원은 후일에 성 삼위일체 성화상(이콘)을 그린 유명한 이콘 작가이며 수도자인 안드레이 류블레프(1370-1430)를 배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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