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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 지배하의 러시아정교회

1223년 타타르족이 러시아의 남부에 출현하여 러시아의 동맹 공국들을 격파하였으며, 1237년 11월에는 징기스칸의 손자인 바쿠가 40만의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을 침입하여 1240년에는 키예프를 점령하였다. 그럼에도 남서지방, 북서지방, 북동지방 등은 다행히 타타르인들의 침입을 모면하였다. 이들 세 지역을 기점으로 러시아인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고 다시금 국가를 재건할 수 있었는데, 특히 러시아정교회는 이들 소수의 러시아인들의 정신적 지주였다.
또한, 이때 러시아에는 타타르인들 뿐만 아니라 스웨덴 등 또 다른 적들이 침입하고 있었다. 노보고로드의 대공 알렉산더 네프스키(1219-1263)는 1240년에 네바 강가에 상륙한 스웨덴군을 격파하였고 1242년 4월 5일에는 튜튼 기사단에 치명타를 가하였다. 당시 러시아에 있어서는 타타르인들보다 서방의 그리스도교인드이 훨씬 더 위협적인 세력이었다. 왜냐하면 타타르인들은 러시아인들을 억압하고 가혹하게 다루었으나 자기들의 문화는 강요하지 않았고, 종교문제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었다. 즉, 그들은 어떤 형태로 숭배되는 가에 상관없이 신의 권위를 존중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서방 그리스도교인들은 러시아에서의 동방정교회 곧 비잔틴 전통 보다도 서방 라틴 그리스도교의 확립을 목표로 하여 침입하여 왔다. 그러나 알렉산더공은 아직 타타르를 치기에는 역부족이었으므로 타타르인들에게 순종하며 러시아인들을 설득시켜 섣부른 저항을 자제하도록 했다. 그렇게 하여 러시아는 안정된 가운데 서서히 힘을 키워 나갈 수가 있었다.
그 시대의 또 하나의 대표적 인물로 키예프의 수좌 대주교 끼릴을 꼽을 수 있다. 끼릴은 러시아인이었다. 그는 39년 동안 러시아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흩어져 있는 러시아인들을 위로하고 가르침을 주었으며 성직자들을 서품하고 교회를 재건하였다. 타타르인들은 당시 수좌 대주교를 비롯한 러시아정교회 성직자들을 존경하였다. 성직자들은 피정복민 가운데 조세납부의 의무가 면제된 유일한 계층이었으며, 성직자들에게 폭행을 가한 타타르인들을 사형에 처하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특권들 덕분에 끼릴과 같은 성직자들은 러시아의 부흥을 위해 전력을 다할 수 있었다. 따라서 그들의 권위는 모든 러시아인들의 인정을 받았으며, 타타르인들의 존경도 받아 세속의 그 어떤 지배자의 지위보다도 높은 권리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수좌 대주교들 가운데 그 어느 누구도 정치 권력을 획득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뛰어난 정치력을 발휘하면서도 민족의 단결을 위해 활동하려고 했던 공후들을 도덕적으로 지원해 주는 정책만을 일관되게 견지했을 뿐이다. 그 결과로 교회의 지도자들은 국가 지도자들과의 돈독한 우정 및 상호신뢰를 확립할 수 있었다.

 

키예프 러시아의 수좌 대주교좌 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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