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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 소비에트 정권에 협력하는 소위 "살아있는 교회"

이후 모스크바 중심 러시아정교회는 소위 "살아있는 교회"의 소수파로 남게 되었다. 티콘의 사망후, 표트르가 총대주교 대리로 되었으나 그 즉시 투옥되었다. 그리고 1927년에는 총대주교 대리로서 세르게이가 "새로운 하느님의 교회 선언"을 발표하여 무신론 소비에트 정부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였다. 1929년 교회를 서서히 질식시키려는 일련의 장기적인 노력이 시작되었다. 이로써 반종교 선전은 더욱 활발하고 단호하게 진행되었다. 각급 학교는 무신론을 전파하기 위한 근거지로 되었으며, 많은 그리스도교인들을 집단농장으로 보내버렸다.
당시, 소비에트 헌법에 반종교 활동의 자유가 있다는 조항을 넣어서 교회는 사회활동금지, 사제교육금지, 교회 안에서 어떠한 종교교육도 금지, 교회에 운동단체금지, 교회 내 도서실 폐쇄, 성경 및 교회서적 출판금지, 교회의 토지, 건물, 현금을 몰수할 수 있게 하였다.
1941년 9월 독일의 침입을 받게 되자, 모든 러시아 교회의 성직자들과 신자들은 뛰어난 용기와 헌신적 애국심을 보이며 소비에트 정부를 감동시켰으며, 아울러 교회를 위해 당시의 소비에트 헌법이 부여한 것 이상의 종교영역에서의 활동의 자유를 확보하였다. 이로 인해 스탈린은 교회에 많은 양보를 하였고 19명의 주교들이 모여 교회회의를 열 수 있도록 허락하여 1943년 9월 세르게이가 총대주교로 선출되었다. 이 신임 총대주교는 공석인 주교좌에 새로이 주교를 임명하고 새로운 사제서품을 하였으며 교회의 문을 여는 등 교회조직을 재건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는 1944년 5월 그의 사망 후 1945년 1월 동방 총대주교들 및 자매 정교회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러시아 교회회의에서 모스크바 총대주교로 선출된 그의 후계자 알렉세이에 의해 더욱 힘차게 추진되었다. 공산주의 통치 초기에 폐쇄되었던 모스크바와 쌍트 뻬쩨르부르그의 신학대학 및 신학 아카데미와 지방 신학교에서 성직자를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후르시쵸프가 집권하면서 교회에 대한 새로운 박해가 시작되었다. 후르시쵸프는 소비에트 체제의 광범위한 개혁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종교적 미신의 잔재를 쓸어 버리겠다고 공언하였다. 각급 학교에서는 다시금 무신론 교육이 시작되었고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신론에 관한 시험을 치러야 했다. 그리고 1943년 이후 개방되었던 교회의 3분의 2를 폐쇄하였다. 이로 인해 교회의 수는 1만 8천개에서 7천개로 줄어들고 말았으며, 2만명에 이르던 성직자의 수도 약 7천명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1964년에는 8개의 신학교 중 5개가 문을 닫게 되었으며, 5천 여명의 신학생도 5백명 이하로 줄어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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