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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르의 권좌

바실 3세의 사망 후 그의 아들 이반(이반 4세 1533-1584)이 즉위하였다. 그는 짜르의 권력은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는 소유파의 가르침에 깊은 영향을 받아, 자기 자신을 하느님이 임명한 러시아의 지도자라고 굳게 믿고 통치 초기에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나 1547년 대화재로 모스크바가 엄청나게 파괴되고 수천명이 사망하자 이반은 이 재앙을 하느님이 자기에게 내린 벌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죄 많은 생활을 고쳐보려고 노력하였다. 따라서 이반은 사제 실베스테르의 조언을 받아 광범위한 개혁을 단행하여 러시아를 번영하게 하였다. 1547년에 이반 4세(이반 대제)는 러시아 최초의 짜르이자 비잔틴의 마지막 황제 바실리오스의 후계자로서 모스크바에서 대관식을 거행하였다. 그리고 1547-1549년 러시아 각지에서 공경받던 성인 중 45명을 엄선하여 장엄한 시성식을 거행하였다. 1551년 러시아 교회회의 또는 '백인 참사회'가 열려 개선된 제도들을 도입히고 아울러 다른 동방정교회에 대한 러시아 교회의 우월성을 천명하였다. 1552년에는 타타르족의 난공불락의 근거지 카잔을 공격하여 타타르족을 패퇴시켰다. 이런 찬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는 성 바실리 성당이 세워졌다. 이 성 바실리 성당은 러시아 문화의 특징이 동방적 요소와 그리스도교적 요소의 독특한 혼합에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이후로 이반은 점차 정신적인 조언자 실베스테르에게 싫증을 느끼게 되었고 하찮은 사제가 높은 지위를 누리고 있음에 분개한 궁정 대진들의 자극을 받고 1559년 실베스테르에게 모스크바를 떠나도록 명령하였다. 1560년에는 언제나 자애로운 조언을 주던 그의 아내 아나스타샤 마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정치는 파행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는 1565년 공포정치를 시작하여 20세기의 전체주의와 유사한 사회혁명을 추진하였다. 이런 혼란과 공포의 와중에 모스크바의 수좌 대주교 성 필리프만이 과감하게 짜르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트베 근처의 한 수도원에 유폐되고 1568년 12월 23일 교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양대 영성의 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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